파리 출장-Auvers sur Oise가는 길

Oise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작은 마을이 하나 차분히 누워 있다. 낮은 언덕 위로는 교회 하나가 그 마을을 바라보며 서 있다. 교회 앞을 지나쳐 조금 더 언덕배기를 오르다 보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마을 묘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 이곳을 찾게 된건 행운이었다. 대지에 차 오른 봄기운이 느껴졌다. 오솔길을 따라 햐얀 꽃들이 피어 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다. 118년전 이 맘때쯤에는 여기 가득 익어가는 밀들이 바람에 출렁거렸을게다. 겨울 밀은 전해 가을에 뿌려져 겨울을 나고 6월 7월이 되면 노랗게 익는다. 고호는 이렇게 익어가는 들판의 밀들을 화폭에 담았다.

평범한 마을 묘지. 묘지 관리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한참을 찾아 헤맬뻔 했다. 묘지만큼이나 그의 묘는 평범하였고 아무런 치장이 없었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치장 대신 그와 동생 테오의 묘를 뒤 덮고 있는 덩굴 정도라 할 수 있다. 오늘은 덩굴이 햇살을 흠뻑 받아 안은채 일광욕 중이었다. 나는 광택이 도는 건강한 덩굴 잎사귀들을 바라보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정적 가운데 10분 남짓 그의 묘 주위를 서성이다가, 잠시 건너편 묘 앞에 있던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았다. 왠지 저번 보다는 괜실히 가까와 지기라도 한듯 한마디 인사라고 나누고 가야할 것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줄창 앉아 있었다. 햇살 내려 앉은 그의 묘지가 참 따사롭게 느껴졌다.

전에 왔을 때 시간에 쫒겨 Auberge Ravoux를 들르지 못했던게 늘 마음에 걸렸던 터라 그 곳을 들렀다.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올라간 2층 4평 남짓되는 좁은 공간에 창문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벽붙이 수랍장 하나가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그 방 벽에는 그가 아마도 동생 테오에게 썼을 법한 편지의 한구절이 적혀 있었다. "Un jour ou autre je crois que je trouvera moyen de faire une exposition à moi dans un café." 언젠가 까페에서 내 전시를 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어.

집에 돌아와 모모를 마저 읽다가 고호를 다시 떠올린 대목이 있었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게 되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이면 세상을 다시 깨어 나게 하는 빛, 그리고 그 빛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 생성되는 색깔들, 우리 모두는 그 안에 평생을 머무르지만 그 속에 담긴 비밀을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그것들이 거는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잃어 버린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색깔에 이를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고 고백했던 집념을 지녔던 한 사내는 경우가 달랐다. 그가 바라보고 냄새 맡고 귀로 들었던 세상은 늘 경이로왔고, 늘 새로왔으며 쉼 없이 숨쉬며 역동하고 있었다.

Auberge Ravoux의 주인장은 고호가 죽은 뒤 그곳을 여인숙으로 쓰지 않고 놔두었다가 고호를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앞서 언급한 고호의 편지 글귀 대신 그의 그림 한점을 그가 묵던 방 벽에 걸려 했지만 이미 고가가 되어 버린 그의 그림을 구할 방도는 없었다. 그럼 이제 그가 예견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는가? 그를 파멸로 몰고 간 그의 보물을 우리가 이제는 공유하게 되었는가? 조용히 질문을 던져 본다. 과연 그럴까? 그의 작품 중 어떤 것이 유사 이래 미술 작품 중 최고가에 거래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한 보물은, 그가 간직했던 보물은 딱딱히 굳어 버린 유화 캔버스 위에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이 그가 햇살과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과 밤하늘 가득 빛을 뿌리던 별들과 교감하고 대화하던 그의 눈길과 가슴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남긴 캔버스의 가치는 이제 인정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벗들로부터는 더 멀어져 가고 있다. 그 햇살로부터... 뭇 생명에 담겨 꿈틀거리는 소중한 향기와 목소리들로부터...

덧글

댓글 입력 영역